
최근 피해자를 모텔 등 폐쇄된 공간에 고립시킨 뒤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하는 방식의 보이스피싱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피해자들은 출동한 경찰관마저 보이스피싱 범죄자라고 의심하며 협조를 거부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11일 대전 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일 오후 12시 42분쯤 대전 동구 용전지구대를 찾은 한 남성은 경찰에게 "여자친구가 어제 아침부터 금융감독원, 경찰이라 주장하는 사람과 계속 통화하는 것 같다"며 "어제 오후 3시부터 모텔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있는데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해당 모텔로 출동해 20대 여성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령사항으로 보이는 메모를 발견한 뒤 피싱임을 확신했다.
경찰은 여성의 휴대전화에 악성 앱 설치 여부를 확인하려 했지만, 여성은 "무슨 권한으로 그러는 거냐", "내 폰에 악성 앱이 없으면 책임질 거냐"며 경찰을 의심하고 강하게 반발했다. 피싱범으로부터 심리적으로 통제된 상태, 즉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던 것이다.
경찰은 계속해서 여성을 설득했고, 결국 여성은 피싱범이 보낸 가짜 수사서류를 보여주며 휴대전화를 건넸다.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악성 어플이 설치된 모습. 대전경찰청 제공 영상 캡처.확인 결과, 휴대전화에는 무려 3개의 악성 앱이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피싱범에게 세뇌된 여성은 "금융감독원에 가면 김민형 과장이 만나준다고 했다"며 여전히 경찰의 말을 믿지 못했다.
결국 경찰은 여성이 받은 수사서류를 대검찰청에서 운영하는 '찐센터'(보이스피싱 감별 콜센터)에 보내 진위 여부를 확인했고, 해당 서류가 가짜라는 답변을 받았다. 경찰은 약 40분에 걸쳐 설득을 이어갔고, 여성은 그제야 보이스피싱 피해를 인지하고 접촉을 차단할 수 있었다.
경찰은 이번 사례를 포함해 최근 유사한 수법이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피싱범은 먼저 피해자를 모텔과 같은 공간에 고립시켰다. 그 후 가짜 수사관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게 하며 피해자의 기존 휴대폰을 공기계처럼 만들고, 새로 개통한 휴대폰에 악성 앱과 개인정보를 이관시키는 방식으로 조작했다.
이후 피해자는 공기계가 된 기존 휴대폰을 경찰에게 제시하며 정상이라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전화를 끊고 가까운 경찰서를 방문하거나, 대검찰청 '찐센터'에 서류를 보내 진위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