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법원종합청사. 김정남 기자"46년 전 재판을 담당했던 분들도 마음속으로는 피고인은 무죄라고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조금 전 검사님께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했는데, 당시 검사가 진정으로 하고 싶던 말을 후배 검사님께서 대신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16일 대전지법 제12형사부(김병만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에 대한 재심 공판에서 46년 만에 다시 피고인석에 선 김용진(69)씨는 검찰의 무죄 구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서강대 국어국문과 2학년 재학 중이던 1977년 학내에서 민주화 시위를 하다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78년 6월 서울 구치소와 10월 공주교도소에서 "긴급조치 해제하라"는 구호를 외쳐 또다시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이 추가되기도 했다.
이날은 옥중에서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 재심 재판이 처음 열린 날이었다.
지난 1975년 5월,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선포된 긴급조치 9호는 유언비어의 날조·유포, 사실의 왜곡·전파 행위 등을 금지했다. 또 집회·시위 또는 신문·방송·통신에 의해 헌법을 부정하거나 폐지를 청원·선포하는 행위 등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013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 9호가 해제 내지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위반돼 위헌·무효이고 현행 헌법에 비춰 보더라도 위헌·무효"라고 판결했다.
위헌이 결정되며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한 재심이 이어졌고, 김용진씨도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학내 민주화 시위 사건에 대해 당시 동료들과 함께 재심 절차를 진행해 10여 년 전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잊고 지내던 옥중 긴급조치 위반 사건이 다시 떠오른 건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였다. 김씨는 지난해 비상계엄을 목격하며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환기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최후진술에서 "형을 선고받은 지도 46년이 지났고, 나이가 들어 되돌아보니 당시 저에게 형을 선고한 분들도 속마음은 저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46년 전 당시 담당 검사였던 최환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장으로 있으면서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자 정권 압력에서도 진실을 밝히고 민주주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발언도 이어 갔다. 그는 "지난해 12월 3일부터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과정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헌법기관이 자신의 역할을 잘 하면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이라며 "국가기관이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에 민주주의 대한 도전을 막아낸 점이 50여년 전 비상계엄에 유신헌법이 선포됐을 때와 다른점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 앞날이 밝다고 생각한다. 모든 역사가 다 그렇듯이 민주주의 역사도 연작소설 쓰는 것과 같다"며 "저는 다음 세대가 쓸 작품이 훨씬 더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김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선고 공판은 다음달 4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