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사과드립니다"…'긴급조치 9호 위반' 46년 만에 무죄

"늦었지만 사과드립니다"…'긴급조치 9호 위반' 46년 만에 무죄

대전지법, 김용진씨 재심서 무죄 선고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김용진(69)씨가 46년 만에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미성 기자.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김용진(69)씨가 46년 만에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미성 기자.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김용진(69)씨가 46년 만에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김병만 부장판사)는 4일 열린 긴급조치 위반 사건 재심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서강대 재학 중이던 1977년 민주화 시위를 벌이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수감 중이던 1978년에도 "긴급조치 해제하라"는 구호를 외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이 추가됐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는 발동 여건 갖추지 못한 채 목적성과 한계에서 벗어나 국민의 자유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했다"며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무효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앞서 김 씨는 학내 시위 혐의로 받은 징역 3년에 대해 이미 10여 년 전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다. 그러나 옥중 시위로 인한 두 번째 유죄 판결은 최근까지 남아 있었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를 계기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새긴 그는 "과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재심을 청구했고, 검찰 역시 지난 5월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했다.

이날 김병만 부장판사는 무죄 판결 뒤 직접 소회를 밝혔다.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법원도, 오늘 무죄를 선고한 법원도 같은 대한민국 법원입니다. 법원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피고인이 겪은 고초에 대해 늦었지만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이 선고가 과거 잘못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김 부장판사는 재판장의 책무와 민주주의의 회복에 대해 강조하며, 소설가 한강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을 가슴 깊이 새기며 앞으로의 재판에 임하겠습니다."

무죄 판결을 받은 뒤 기자들과 만난 김 씨는 담담하게 소회를 전했다. 그는 "오늘 이 재판이 앞으로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과거가 우리를 구한 것처럼, 지금 우리가 또 미래를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975년 5월,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선포된 긴급조치 9호는 유언비어의 날조·유포, 사실의 왜곡·전파 행위 등을 금지했다. 또 집회·시위 또는 신문·방송·통신에 의해 헌법을 부정하거나 폐지를 청원·선포하는 행위 등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013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 9호가 해제 내지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위반돼 위헌·무효이고 현행 헌법에 비춰 보더라도 위헌·무효"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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